Spelling Bee @ Circle in the Square
말장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어 장난. 하지만 그것으로도 뮤지컬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누가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악이라고 했던가? (바로 나! ㅋㅋ) 이 뮤지컬의 스타는 바로 작가 레이첼 셴킨이다. 그의 펜끝에서 뿜어나온 단어들은 작곡가의 콩나물 대가리를 저쪽에 멀리 치워버렸다. 뮤지컬을 보면서 이토록 음악에 신경을 안쓰고 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본에 대한 칭찬인가. 당연하지. 그럼 음악에 대한 실망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윌리엄 핀의 음악은 비록 작곡가들에게 전범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지는 못한다. 그의 음악은 ‘그를 위한’ 음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체 왜 발전이 없으시냐고…

극장에 갔다가 마시 박(사진)역의 데보라 그레익 대신 다른 배우가 나온다는 공지를 보고 주저없이 발길을 돌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브로드웨이에서 한국계 미국인 학생역을 맡았다며 한때 한국의 매스컴의 한켠을 장식했던 그의 활약을 못본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결국 다음날 공연에서 그를 보게 되었다. 예상대로 그의 연기는 신들렸다. 뽕맞고 작두를 타는 기운도 느껴졌다. 어려서 한국에서 입시지옥을 경험하고 너무 억눌려 살다보니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있는 아이 역이라는 식으로 소개가 된 기억이 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또라이’다. 어찌나 실감나게 연기를 하는지 이 또라이가 자기 차례가 되면 무슨 사고를 칠까 긴장하게 되더라는.. 혼자 원맨쇼를 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탄성이 나왔다. 이 배우는 앞으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철자법 경시대회에서 출연하는 학생들의 대회 모습과 각자의 독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나뉘어 있는 이 작품은 어찌보면 외형적으로 너무나 뻔한 구성을 가졌다. 극장이 서클 인 더 스퀘어니 무대 장치에 대해 일찌감치 포기하고 갔을테고 (무대에 풀장을 만들지 않는 한) 작은 스테이지에 많은 객석. 오히려 좋은 조건이 아닌가? 제임스 라핀의 연출은 좋았다. 그 환경에서 나름 최대치를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날 그날의 관객중에서 공연에 함께 참가하는 스펠러들이 네명 있는데 그중 한명은 내 바로 옆자리 남자, 또 한사람은 내 바로 앞자리 여자였다. 이 두 사람이 극의 중반까지 무대에 있느라 빠져주니 어찌나 내 자리가 편하던지…
재미있었던 건 원래 대본대로 어느 싯점에서 탈락되어야 할 관객 스펠러가 예상을 뒤엎고 맞추는 바람에 (그것도 10대 초반의 여자아이였는데 거의 찍어서 맞춘 분위기) 배우와 객석 모두가 뒤집어졌다. 난감한 배우들.. 대본에 의하면 다음 차례는 다른 배우가 무대 중앙에 나설 차례인데 다시 그 여자 아이 관객을 불러놓고서는 난생 처음 듣는 단어를 내어 기어이 떨어뜨렸다. 보통은 스펠링 전체를 다 듣고 나서 맞았다 틀렸다를 말해주는데 이번에는 여자아이가 ‘X’라고 입을 떼자마자 출제자 역의 배우는 ‘C로 시작해 땡!’ 이렇게 바로 퇴장시켰던 것이다. 오늘의 교훈 – 쇼는 필요 이상의 에드립은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면 쇼는 ‘각본대로’ 계속되어야 하므로.
Hot Feet @ Hilton Theater

Hot Feet, a new dance musical conceived by Maurice Hines, featuring music and lyrics by Maurice White, and directed and choreographed by Maurice Hines
흙, 바람 그리고 불 – 십대 시절부터 즐겨들었던 수많은 주옥같은 밴드들의 음악처럼 그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의 외모를 확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수년전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난 뒤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 일본에서의 공연 실황을 NHK 위성방송에서 우연히 본 것이었다. 가요무대를 즐겨보시는 아버지와 내가 다른게 무엇이더냐. 출연자의 연령대는 어차피 비슷한데…
두 유 리멤바~로 시작되는 셉템바~ 등 주로 ‘바’로 끝나는 단어를 많이 쓴 힛트곡(으음…)을 발표해온 Earth, Wind & Fire의 주옥같은 힛트곡을 엮어서 만든 뮤지컬 Hot Feet. 오랫만에 쇼의 오프닝과 함께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고 불행히도 그 예상이 정말로 맞는 작품을 만났다.. 분홍신에, 페임에, 42번가에 종합선물세트. 그래도 다행이다. 풋루스는 없어서… 어떻게 이렇게 70년대의 정서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현실적인 촌스러움과 무대 장치들까지 오로지 일부러 일관된 컨셉으로 설정하지 않고서야 원 이럴 수는 없다.. 게다가 요즘 또 흑인 뮤지컬이 칼라 퍼플 밖에 없다보니 한직을 돌고 있는 흑인 댄서들 총출동 분위기.
비록 포 시즌즈의 음악이 뮤지컬 저지 보이즈로 한참 뜨고 있지만 이미 작년과 올해에만도 존 레논, 엘비스 프레슬리, 비치 보이즈의 뮤지컬이 장렬하게 산화해갔다. 미국의 팝 뮤지컬도 이제 성공과 실패의 공식이 점차 드러나는 것 같다.
I Want to dance Better at a Party – Chunky Move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댄스를 전공했던 사람이나 공부한 사람들은 확실히 몸에 집중한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음악과 몸의 소통에 집중한다. 나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아이디어다. 그게 꼭 드라마를 찾는다는 건 아니다. 가끔 드라마가 춤 자체를 완전히 망쳐버리기도 한다. 성악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춤꾼은 자신의 몸으로 모든 걸 다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나같은 무식쟁이는 조금은 더 소통하기를 원한다. 좀 더 다가와 주기를. 그렇다고 메튜 본이 그 해결은 아니다. 가끔 메튜 본의 춤을 보면서 춤이… 모자람에서 오는 기갈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그는 ‘드라마’에 갇힌 때문이다. 춤꾼은 춤으로 터져야 한다. 장르 허물기라는 말이 뭐 신기하기라도 한 듯 한 때 난리였는데, 그 난리가 지나간 후, 장르간의 소통은 봇물 터진 듯 무대 위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잘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올해 링컨센터 페스티벌에 올라온 줄리 테이머의 그렌델이다. 애당초 아이디어는 좋았다. 고욱지책이었지만. 영상, 몸, 노래, 플레이, 음악… 또 무대. 설레이지 않는가. 장르가 겹칠수록 관객은 더욱 더 무대와 소통할 통로를 더 많이 얻을 수도 있다. 오늘 조이스 극장에서 본 청키 무브의 이 작품은 다큐와 인간의 일상이 겹친다. 다섯 명의 사내의 독백. 춤에 대한. 별 달리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안무가의 절제된 유머감각과 아이디어가 느껴져 좋았다. 특히 몸으로 모든 걸 표현하겠다는 사랑스러운 그 고집이 한 명의 댄서를 자동차에서 컴퓨터까지 변신시키게끔 한 그 뚝심과 유연한 몸에 반했다. 호주 출신의 청키 무브, 왜 자꾸 뉴욕에 오는지 알 것도 같다. 어찌 보면 좀 투박한데도 이들의 춤은 어찌 이리도… 진심이란 말인가.
잘 생긴 몸이 표현력 있는 몸이 아니다. 하지만 표현력 좋은 몸은 눈이 간다. 튈려고 난리 쳐도 물론 눈이 간다. 하지만 의욕만큼 표현력이 따라 주지 않으면 결과는 서글프다. 그러니까… 기초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몸’의 경우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나도 어려서 잘 배워두지 않으면 뼈 굳고는 쉽지 않다. 갈수록 몸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때로 그 몸은 전부다. 무대 위에서 헬리콥터가 날고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홍수가 나도 그 무엇도 살아있는 몸을 대신할 수는 없다. 현현하는 몸. 경배하고 또 증오한다.
‘totally new’ Sweeney Todd
Eugene O’Neill Theater, Jun 27th, 2006 @ 8pm
이번에 새롭게 리바이벌 된 패티 루폰과 마이클 세브리스 주연의 스위니 토드. 그것보다는 연출가 존 도일의 스위니 토드라고 하는게 더 맞겠다. 10명의 배우들이 한발짝도 무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연기와 노래는 물론 악기 연주까지 해내야 하는 존 도일의 연출은 확실히 배우를 힘들게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부산한 움직임속에서 강렬하고 정제된 연출 미학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세명만이 살아남고 출연자 모두가 죽는 비극중의 비극인 원작이지만 이번 리바이벌 버젼에서는 그 죽음마저도 새롭다. 죽었던 배우는 피묻은 흰 가운을 갈아입고 천연덕스럽게 일어나 연주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비극속에서도 그 특유의 위트와 라임의 조화속에서 끊임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거기에 존 도일은 배우들의 노가다를 통해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죽어도 죽지않는 불멸의 캐릭터들.. 멋지다.
서울의 궁정동에서 경제개발과 계집질에 불철주야 애쓰던 한 독재자가 머리에 총을 맞고 피를 흥건히 방석밑에 적시고 있을때, 이 작품은 뉴욕에서 막이 올라 극중 출연자들이 사정없이 죽어나가며 피를 양동이 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당시 공연 실황이 DVD로 발매되어 절찬리에 판매중인데다가 오리지널 연출 무대도 몇년을 주기로 뉴욕 시티 오페라에서 리바이벌되고 있다. 게다가 전혀 새로운 존 도일 버전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볼 수 있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이제 점점 스위니 토드가 왜 가장 뛰어난 뮤지컬 작품인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기도 지친다. 내가 피력한다고 또 이런 걸작이 나올거라면 몰라도..
70살이 넘어서 비로소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연출상을 받으며 인정받은 늦깍이 중의 늦깍기 연출가 존 도일. 그의 올해 토니상 연출상 수상 멘트는 그래서 절절했다. ‘성공하고 싶은가? 당신은 결코 늦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그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니까.’ 존 도일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의 건투를 빈다. 물론 2008년에 <컴퍼니>를 같은 버젼으로 리바이벌 한다는 뉴스에는 사뭇 긴장이 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