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eutenant of Inishmore
@ Lyceum Theater
영국 출신 극작가 마틴 맥도너는 젊다. 그가 스물 여덟의 나이로 <리네인의 미의 여왕>(Beauty Queen of Leenane, 1998)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을 때 이미 그는 영국의 가장 촉망맏는 젊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작품을 연출한 영국 연출가 게리 하인즈는 영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았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자리잡은 드루이드 극장에서 처음 공연한 1996년 1월 이후 바로 런던의 웨스트 엔드로 옮겨갔고 2년 후에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인 아틀란틱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바로 석 달 후에는 브로드웨이로 올라가는 등 빠른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그의 작품은 롱런하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팬층을 형성하면서 불과 7년 사이에 네 개의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올라오면서 주요한 작가로서의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최근 그와 함께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또래의 <마켓 보이>(Market Boy)의 작가 데이빗 엘드리지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데이빗 엘드리지가 마치 미국 작가들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갈수록 깊이 천착해 들어간다면 마틴 맥도너의 작품은 처음에는 아일랜드의 오지에서 시작하여 닫힌 사회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분노가 어떻게 작은 마을 안에 갇혀 개개인을 향해 칼처럼 날아가는가를 보여 주었다면 나중에는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쪽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그의 세 번째 브로드웨이 상연작이었던 <필로우맨>(Pillowman)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브로드웨이 상연작인 <이니시모어의 중위>는 쓰여진 순서로는 <필로우맨>보다 앞쪽이면서 그의 작품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데뷔작인 <리네인의 미의 여왕> 은 두 모녀의 애증을 다룬 작품이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돌보는 바람에 혼기를 놓친 사십 줄에 들어선 딸의 서로를 못 죽여 안달하다 결국 딸이 어머니를 죽이는데 성공(!)하는 내용으로 이 작품 어디에서도 모녀지간의 애틋함은 털 끝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초장부터 거대한 덩치의 어머니는 장을 보고 들어선 딸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갖 잔소리는 물론 딸의 동정을 자아내기 위한 꾀병까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비열한 노인네고, 그 노인을 대하는 딸은 물을 마시려고 집어든 컵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만큼 자신의 친 어머니를 증오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들이 왜 그렇게나 미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참 어지러웠던 시절의 아일랜드의 현실과 맞물려 돌아간다.
영국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IRA를 결성해 무장 항거를 시작했지만 덕분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출구 없는 암흑같은 삶으로 빠져들어갔다. 사내들은 무기를 들고 집을 나갔고 여자건 남자건 살아남는 게 일단 급선무였다. 아일랜드라는 척박한 땅에서도 또 전기마저 까막까막 들어왔다 말았다 하는 믿을 수 없을만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도 이들 모녀는 그들의 생계수단인 주막, 그것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하루에 두셋 뿐인 말 뿐인 곳에 갇히다시피 하여 서로의 분노를 서로에게 쏘아대는 것 말고는 남지 않은 인물들이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이 오면 관객들은 이런 결말마저 이 작은 마을에서는 그닥 낯선 일이 아님도 깨닫게 된다.

.사람보다 귀한 고양이 목숨?
주인공인 페드레익은 ‘자칭’ 이니시모어의 중위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인 도니조차 어쩌지 못한 개망나니였지만 그의 아버지 역시 아내를 두들겨 패던 망나니였었다. 페드레익은 자신의 불행을 전적으로 자신을 잘못 키운 부모에게로 돌리지만 어머니를 가끔 두들겨 팼던 아버지 도니는 차라리 인간적인 인물이다. 사건의 발단은 도니의 주막 일을 가끔 거드는 소심한 동네 청년 다베이가 동생의 분홍 자전거로 그 무서운 페드레익이 애지중지 하는 고양이를 치어 죽이는 엄청난(?) 사건 때문에 시작된다.
소심한 다베이는 이 일을 절대 페드레익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도니에게 사정사정 하지만 도니 역시 이 일이 아들에게 발각되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두렵기는 마찬가지. 결국 아들에게 전화해서 고양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만을 전한다. 그 때 페드레익은 제임스라는 마약상을 거꾸로 매달고 고문하는 일에 바쁜 중이었다. 청소년에게 마약을 판다는 이유로 제임스를 고문하는 페드레익은 첫 등장으로 이미 관객에게 제정신이 아닌 인물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내 보인다. 청소년에게 마약을 파는 제임스는 물론 악당이지만 자신이 직접 심판자이자 집행자의 역할까지 자처하지만 누구도 그 권한을 부여해 준 적이 없는 페드레익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피를 흘리는데도, 그 입에서 나오는 시니컬하면서도 앞 뒤가 안 맞는 멍청한 대사들 때문에 관객은 웃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은 패드레익 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똑같다.

이를테면 페드레익이 고양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돌아온다는 소식에 놀란 다베이가 여동생의 고양이를 물들이기 위해 구두약을 발라대는 장면에서 이 작전이 말도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오로지 무대 위의 다베이와 도니 두 사람 뿐이다. 페드레익이 돌아온다는 소문은 빨리도 돌아 조직 안에서도 골칫덩어리인 그를 없애기 위해 동네 깡패같은 존재인 IRA의 떨거지같은 세 명이 모인다. 사실 페드레익 역시 IRA에 가입하기를 원했지만 대체 이념이라고는 없이 잔인하기만 한 인물을 받아들여주는 조직이 있을 턱이 없기에 쫓겨난 뒤 자칭 혼자만의 잔인한 처벌을 하고 다니던 중이었고 그런 행각은 조직의 입장에서는 환장하고도 남을 정로도 어이없는 살륙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동네 청년인 다베이를 묶어놓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던 페드레익은 이번에는 주막으로 쳐들어온 이 세 깡패로부터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지만 웬걸, 분홍 자전거의 주인인 다베이의 여동생 메어리드의 출현으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깡패 세 명은 관객의 눈 앞에서 페드레익의 손으로 사살된다. 한 명 한 명이 총을 맞고 죽을 때마다 정교하게 계산된 피가 뿜어져 나오고 배우는 피투성이가 되어 픽 픽 쓰러진다.
작품 말미에서 관객들은 주인공인 페드레익보다 한 술 더 뜨는 그의 여자친구 메어리드의 실체에 경악하게 된다. 메어리드는 페드레익과 함께 그의 아버지와 자신의 오빠를 처단하고 동네를 떠날 계획이었지만 화장실에서 구두약을 뒤집어쓴 고양이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그걸 죽인 사람이 바로 페드레익이란 사실을 알자 서슴없이 페드레익의 머리에 총을 쏜다. 나이가 어릴수록 잔인함이 더욱 극에 달하는데, 그만치 죽음에 무감하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극은 허망해지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머레이드가 떠난 후 악몽같은 날이 밝아오는데, 죽은 줄 알았던 패드레익의 고양이가 돌아와서는 밥을 달라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힌 도니와 다베이는 자신들이 당한 수모가 다 그 고양이 탓이라며 바닥에 흩어진 총을 집어 고양이를 겨누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평범한 인간에 대한 진실이다. 고양이 한 마리 쏘지 못하는..피, 너무 많아서 놀랍지도 않은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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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d’Arcy James (left), Andrew Connolly and Dashiell Eaves |
이 작품은 시작부터 피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내내 관객들은 웃어야만 하는 기가 막힌 딜레마에 시달린다. 무대에서 피를 보는 것은 사실 그닥 달갑지 않은 일이다. 봐도 별로 무섭지가 않기 때문이다. 호러 장르는 영화에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무대에서는 그닥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무대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소품도 발달해 왔고 피 역시 발달해 왔다. 이를테면 영화에 쓰이는 피보다 좀 더 점도가 높고 색이 짙은 무대용 피는 배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배우의 옷에 묻는 것, 시체에 쓰이는 것 등이 모두 다른 제조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작품에서 피는 관객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 쓰이지 않는다. 극도로 비현실적인 죽음 앞에서, 즉, 코미디일 수 밖에 없는 죽음을 더욱 더 강조하는 소품으로서 쓰이며 넘치는 피와 넘치는 코미디로 ‘죽음’과 ‘살인’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되묻고 있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단지 고양이 하나 뿐이라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순식간에 무시될 수도 있지 않나며 뻔뻔한 얼굴로 되묻는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 무대에 선 배우들의 역량에 조금 문제가 있다. 200석짜리 아틀란틱 극장에서 할 때는 무리가 없었지만 천석이 넘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자 이들의 연기는 지나치게 위축되었다. 섬세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소극장 무대와 멀리 있는 관객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대극장 연기는 확실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연극의 경우 마이크의 사용을 뮤지컬에 비해 훨씬 소극적으로 사용하여 배우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더 더욱 경험이 적은 배우들에게는 쉽지 않은 공간이다. 페드레익 역의 데이빗 윌못, 깡패 두목 역의 앤드류 커널리 등을 제외하면 배우들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게다가 변환 없는 무대를 억지로 바위산을 끼워넣은 무대 디자인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이 프러덕션은 애당초 큰 극장에 어울리는 규모를 지니지 못했기에 롱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틴 맥도너의 팬이라면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하며 짧은 공연 기간을 결코 놓치지 않았을 블랙 코미디였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팝가수 빌리 조엘의 힛트곡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 <무빙 아웃>(Movin’ Out)으로 토니상 안무상을 받은 현대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 이 분이 새로 만드신 작품은 빌리 조엘에서 밥 딜런으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포맷의 팝가수 뮤지컬이다. 제목 역시 <무빙 아웃> 처럼 힛트곡 제목이기도 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
그런데 말이죠. 업계 통신을 종합해보니 현재 프리뷰 중이며 공연 개막(10.26일)까지 불과 보름만 남아있는 이 프러덕션에서 엄청난 뒷담화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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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nn Colella and Michael Arden in The Times They Are A-Changin’ (Photo © Craig Schwartz) |
첫 소식은 다름아닌 주연 여배우를 맡은 카렌 린 마누엘이 부상으로 캐스트에서 빠졌다는 것. 작년의 <스윗 채러티>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는 것일까. (차이가 있다면 스윗 채러티는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가 다쳐서 프리뷰때만 언더스터디로 교체되었지만 이 공연은 열번의 프리뷰 직후 언더스터디를 맡고 있던 리사 브레시아로 아예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카렌 린 마뉴엘이 부상을 입기 이전에도 이미 총 열명의 배우 중 무려 대여섯명이 짤렸다고 한다. 그 중에서는 샌디애고 트라이아웃 공연때 여주인공을 맡았던 젠 코렐라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젠 코렐라는 왜 뉴욕 공연에 초대받지 못했을까? 물론 젠 코렐라의 인터뷰에 따르면 트와일라 타프가 뉴욕 공연 캐스팅을 앞두고 자신을 불러서 프로듀서들이 다른 여배우를 찾기를 원한다는 말을 전했다고 하는데… 음 과연 그럴까? 트와일라 타프 – 이분 나이가 환갑이 넘으신 할머니다. 그리고 현대무용계에서 이룰만큼 이룬 분이고 <무빙 아웃>으로 토니상도 받고 안될 것 같았던 흥행도 이루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프로듀서 동생들이 들고 있어났다고 그걸 따라갈 분인가? 아마도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 사실들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는 트와일라 타프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젠 코렐라는 프로듀서들로부터 섹시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짤렸다기 보다는 트와일라 타프가 원하는 이 작품의 ‘복잡하고 심오한’ 안무의 세계를 따라잡지 못해서 혹은 더 많은 이유로 눈밖에 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빠진 카렌 린 마뉴엘은 정말로 부상 때문일까? (왜 내가 점점 찌라시 기자 투로 바뀌는 거야?)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여주인공으로 발탁이 되긴 했지만 이 언니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섹시함은 갖추었지만 밥 딜런의 목소리에는 맞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이 작품은 <무빙 아웃>처럼 빌리 조엘을 꼭 빼닮은 가수가 있는 밴드는 위에서 노래부르고 댄서들은 아래에서 춤만추는 그런 ‘브로드웨이 발레’ 스타일이 아니라, 일반적인 노래와 연기, 춤이 있는 북 뮤지컬이다. <무빙 아웃>의 인기의 상당 부분이 춤을 추건 말건 빌리 조엘과 흡사한 목소리의 가수의 노래를 즐기는 일반 관객들 덕분이었다고 한다면 밥 딜런의 경우에도 그의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무도 밥 딜런의 분신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극중에 없다. (그렇다면 맘마미아?) 게다가 도중 하차한 카렌 린 마뉴엘은 소위 ‘질러’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근데 밥 딜런 노래를 질러로 부르면 뭐가 되는거야. 그래서 마뉴엘에게 꼭 맞는 역할은 <위키드>의 녹색 마녀였다나…
또다른 뒷담화는 현재 프리뷰 중인 이 공연이 매일 조금씩 안무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프리뷰 기간은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그렇게 바뀌지는 않는다.) 안무가 출신인 트와일라 타프에게 안무는 드라마를 전달하는 직접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매일 바뀐다는 의미는 스토리가 여전히 관객들에게 명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전쟁 시기에 정신장애를 겪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서커스 단장이 운영하는 삼류 유랑 서커스단에 관한 우화같은 휴먼 스토리다. 그런데 이 부자가 각각 같은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 엽기 상황도 발생한다는데.
게다가 결정적인 뒷담화는 이 작품의 드라마가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것이다. 대본 작가를 리허설에 오지 말아달라고 했는가 하면, 배우들 조차도 내용 파악을 다 못하고 있다는 엄청난 소식이다. 한 예로 얼마전에 배우중 한명이 트와일라 타프에게 무대에 등장하는 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가 배우들을 향해 던진 말인 즉.
트와일라 : “OK people, what does the boat mean?”
배우들 : “…………………………….”
트와일라 : “Come on, people! It’s Melville. Melville!”
배우들 : “…………#%@#& ……….”
(다 아시겠지만 참고로 멜빌은 모비 딕의 작가인 허먼 멜빌, 근데 서커스단과 백경?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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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ylan |
게다가 밥 딜런의 원곡이 브로드웨이에 맞게 편곡되면서 원곡을 유추하기 힘든 정체불명의 스타일로 바뀌었다가 주변의 불만이 커지자 막판에 트와일라가 다시 포크송으로 바꾸도록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풍문이 돈다.
이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 뿐. 한명은 트와일라의 오랜 친구이자 이 작품의 연기 감독인 랠리 모스(힐러리 스왕크, 헬렌 헌트, 제이슨 알렉산더 등이 그의 레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함) 또 한명은 바로 밥 딜런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이미 랠리 모스의 손을 벗어난 듯한 분위기라고 한다. 게다가 밥 딜런은 트라이아웃 공연에도 딱 한번 공연을 관람했을 뿐이며 뉴욕에서 프리뷰가 열리고 있는 현재까지도 아무도 그를 극장 근처에서 본 사람이 없다고…
여기서 잠깐 우리의 씩씩한 코리안 앙상블 마커스 최! 어떡해~
P.S #1 : 이 공연이 예정대로 개막되면 제작비 전액에 해당하는 100억원의 사상 최악의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하지만 <무빙 아웃>도 프리뷰 때까지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개막 후 호평을 받았던 전례를 들어 트와일라 타프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로 흥행에 낙관적인 기대를 가진 사람도 있다.
P.S #2 : 이 작품의 트라이아웃에 여주인공을 맡았다가 정작 뉴욕 공연에서는 짤린 젠 크롤라는 같은 시기에 개막하는 다른 뮤지컬 <High Fidelity>에 캐스팅 되었다. 그런데 참 이 언니 남같지 않다 생각했더니 2003년 최악의 작품이었던 <Urban Cowboy>의 여주인공이었다는 사실. 갑자기 긴장된다. 인생이 새옹지마가 될지 X차 피하려다 XX차 만난건지는 곧 판가름이 날 듯.
P.S #3 : 밥 딜런은 196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해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뮤지컬 음악이 대중음악으로서의 왕관을 락음악에 넘겨주었던 그 당시 락계를 이끌던 장본인 중의 한사람 아닌가.
P.S #4 : 브로드웨이 공연 올라가기 힘들다지만 몇몇 사람들을 너무 믿고 일이 추진되다 보면 이렇게 나중에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몇년전에 피비린내 진동했던 <Dance of the Vampires>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창작진들의 의견 조율이 실패하면 십중팔구 작품은 실패한다는 점이다. 왜냐면 파트별 컨셉이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에서 그 난맥상이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달될 수 밖에 없다.
제작 과정이 총체적인 난국이고 공연도 대충 올라갔는데도 객석 반응이 뜨거운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그러면 안된다. 그런데 그 원칙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더라. 그렇게 만들때부터 난리를 치고 고통을 준 사람들이 단지 특정 계층의 선호도 덕분에 매표 상황이 좋다고 작품이 잘나왔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냥 이번주에 열리는 2006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 후보작들을 보고 잠시 경악해서 사족을 덧붙인다…)
창작뮤지컬 : 컨페션
작년 한해 호평을 받고 현재도 장기 공연중인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왕용범 연출, <뮤직 인 마이 하트>, <폴 인 러브>, <살인사건>의 작가/연출가 성재준의 대본, TV 배우 출신으로 최근까지 <아이 러브 유>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 뮤지컬 배우로 거듭난 정성화, <그리스>, <드라큘라>를 통해 가창력을 선보인 여배우 윤공주 등 현재 뮤지컬 계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제작진/배우들이 만든 창작 뮤지컬 <컨페션>이 개막했다.
<컨페션>은 ‘피아노 바’인 변두리의 레일로드 카페를 배경으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가수를 꿈꾸는 스타지망생 김태연(윤공주 분)과 청력을 잃어가는 ‘베토벤 증후군’을 앓고 있으면서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과거 무명시절 자신이 일했던 옛 카페를 찾아온 유명 가요 작곡가 이주현(정성화 분)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이주현의 헤어진 옛 예인이자 그의 곡으로 스타 가수가 된 이혜미(최우리 분)가 다시 나타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되는데 결국 이주현은 새로운 사랑 대신 옛 사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근래에 만들어진 창작뮤지컬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진지한 주제를 택하고 있다. 작곡가에게 가장 큰 형벌인 청력 장애를 가진 이주현과 가수가 되고 싶지만 기회가 없는 변두리 까페의 웨이트리스 김태연의 첫 만남과 그의 옛 애인과의 삼자 구도는 일단 설득력이 있다. 거대하게 재현한 무대 셋트와 카페의 컨셉을 살린 철길 셋트 역시 크지 않은 충무아트홀 소극장 무대를 가득 채워 포만감이 들게 한다. 박초롱의 음악은 최근 창작뮤지컬 중에서 가장 완성도 있는 좋은 선율을 가졌다는 점도 이 작품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극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무리수가 엿보인다. 무엇보다도 극의 무게중심이 분산되어 있다. 초반에는 김태연(윤공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는가 싶더나 중반 이후에는 이주현(정성화)이 그 바톤을 이어받고 후반부에는 다시 뒤늦게 등장한 이혜미(최우리)에게 갑작스런 비중이 쏠린다. 특히 이혜미의 등장으로 삼각관계가 형성되고 이주현이 다시 그녀에게 돌아간다는 결말이 급작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려면, 그 결말을 유추할 수 있는 뮤지컬 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가령 초반부에 이혜미가 정말 실력 있는 가수라는 것을 뮤지컬 시퀀스로 보여준다든지 현재 이주현과의 헤어짐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암시적인 장면을 부가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앙상블들이 등장해서 환상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문제점이 보인다. 가령 웨이트리스 김태연이 상상 속에서 스타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다른 배우들이 완벽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코러스 겸 백댄서 역할을 하지만, 노래와 춤이 끝난 후 현실의 카페로 돌아와서도 암전이 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극이 진행되는 장면은 뮤지컬의 기초 문법에 이탈해있다.
시각적으로 아기자기함을 주는 철길은 -제작진이 의도했건 안했건- 객석에서 보면 무대(김태연이 갇혀있는 카페)와 객석(드넓은 바깥세계)을 정확히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극 중반에 느닷없이 카페 사장이 관객들에게 맥주를 나눠주는 장면에서 철길을 건너는데 이 행위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 부분은 PPL를 위해 극의 맥을 어쩔 수 없이 끊게 되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극 전체적으로 카페 안에서만 머물게 되는 설정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사랑의 진도가 더딤에도 불구하고 김태연이 카페안에서 밤을 새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면서 다음 장면이 계속 카페로 이어지게 된다. 철길 역시 초반에는 레일로드 카페의 인테리어의 느낌이 강한데 후반부에 실제 야외의 철길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조명을 비롯한 전체 분위기가 야외의 느낌이 들지 않아서 그나마 유일한 공간 이동의 재미가 희석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인터미션 없이 100분간 극을 진행하는 방식은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할 때 맞는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노래로서 살리기 위해서는 다소 작품의 분량이 짧은 면도 보인다. 이혜미의 갑작스런 등장 이후 기본 구도는 삼각관계로 바뀌지만 그 이전에 이주현은 김태연에게 마음을 흔들릴 정도의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오로지 철길 장면 하나로 둘 사이가 급격하게 발전하기에는 설명이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애초부터 둘 사이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운명으로 설정되었고, 그래서 바로 이주현이 옛 애인에게 쉽게 돌아가 버린다면 이 작품은 스토리가 빈약한 작품이 되어 버릴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컨페션>은 좋은 주제와 설득력 있는 시놉시스를 가졌지만 작품의 컨셉과 무대 행위들이 묘하게 겉도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극중 비중이 높은 세명의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가창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장점이 크며, 최근 창작뮤지컬의 제작 붐을 이끌고 있는 제작진들이 계속해서 한국적인 주제와 설정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느껴지는 작품으로서 앞으로의 선전을 기대한다.
My 10th ‘Broadway Visit’ Anniversary
홈페이지를 블로그로 개편하고서 업데이트가 매우 매우 게으르다. 블로그를 자주 업데이트해서 방문하는 손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제대로 된 블로그 주인의 마인드가 거의 없는게 아닐까?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었던 8년전을(으음.. 벌써..) 돌이켜본다. 그때는 또 얼마나 부지런히 가꾸고 기름칠을 해댔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여러 경로로 연락이 오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업계의 인맥도 그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때로는 손님들을 오프라인에서도 만났고 그중 몇몇 사람들과는 여전히 연락하며 친하게 지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2년전 뉴욕을 떠나는 싯점에 모든 게 달라졌다. 홈페이지에서 가장 공을 들였던 컨텐츠인 뉴욕의 극장가 소식은 더 이상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 뉴욕에 살던 7년 동안 때마침 한국에 불어닥친 뮤지컬의 광풍. 오 장난 아니었다.. 그때 업데이트한 많은 정보들이 그 기간동안 실로 많은 업계 관계자분들에게 읽혀졌다고 들었다. 그중엔 말없이 퍼가서 본인의 업무에 고스란히 활용한 분들도 계시고… 물론 개별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제외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의 80%는 책에 썼다. 사실 2004년초에 책을 준비하면서부터 홈페이지 업데이트는 뜸해졌던 것 같다.
그런 책이 출간될 수 있었던 사실만 해도 고마웠다. 하지만 그 책이 나온 순간 우리가 그간 수년 동안 고민하고 정리했던 것이 상품으로 나옴으로 해서 이제는 확실하게 더 이상 그런 정보들이 고급 정보의 영역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 정말로 많은 단순한 질문들이 게눈 감추듯 줄었다. 하지만 뮤지컬의 광풍 속에서 정말로 한국에서 브로드웨이가 가까워졌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뮤지컬의 활성화가 갑작스럽게 가져온 그 과실의 향기만을 즐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아예 몰라서 기초부터 자료 조사를 통해서 공부를 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제는 이러한 정보들로 벼락치기를 한 후 상황을 오판하고 그것이 옳다고 잘못 믿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공연은 영화가 아니다. 그때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면 제발 입을 닥치시오.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짧은 자문자답. 근데 내가 왜 떠났던가? 좀 더 스테디한 일과 돈을 위해서. 귀국을 앞두고 막연하게 한국의 뮤지컬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를 가진 인력들이 늘어나고 그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동안의 경험을 업무로 연계시키게 되었으니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유학생활 내내 어려웠던 경제 생활을 타개하기 위해서 선택한 이길. 하지만 몸을 담그면 담글수록 알면 알수록 왜 만족감은 옅어만 가는 것일까?
이제 예전처럼 좋은 공연을 홈페이지를 통해서 좋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사실 우습지만.. 좋다고 열심히 열변을 토해가며 소개했던 공연이 어느 순간에 허접한 라이센스 공연으로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난데없이 올라와서 처절하게 패퇴해가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함께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왜 블로그를 이글루나 네이버를 쓰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럼 방문자가 많이 늘텐데… 왜 아무도 모르는 wordpress를 쓰는지…하면서 말이다. 글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지금보다 좀 부지런하다면 한국 뮤지컬 계의 음울한 미래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다. 충무로의 뮤지컬 열풍도, 원소스 멀티유즈의 뻔한 허상도, 프러덕션의 이해와 깊이는 없고 주변부의 가쉽만 남은 공연 리뷰, 말도 안되는 리딩과 쇼케이스 결과물들. 하지만 어떡하나. 나 게으르거든. 혼자 노는 거에 익숙하다고 했다. 대신 뉴욕을 떠난 후 뮤지컬 DVD를 모은다. 물론 이 취미는 오래가지 못한다. 대략 200개 정도만 모으면 모든 게 끝난다. 지금은 절반쯤 왔나? 물론 공연은 영화가 아니다. 극장에서 못푸는 한을 이렇게나마 푸는 것을 뿐.
나는 마녀가 뉴욕에서 내가 이루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나를 대신해서 마저 배우게 되기를 기대한다.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 이상, 앞만 보고 달렸으면 좋겠다. 자기 쇄신을 하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고, 실력은 헬스 키친의 타운하우스인데, 말로는 아발론 아파트 옥상에 가있는 초조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는 정기적으로 인간관계의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리고 잘 팔리는 수만 가지의 이야기가 널린 그곳의 정기를 내 몫까지 받았으면 좋겠다.
어느덧 뉴욕을 처음 갔던게 지난주로 꼭 10년이 되었다.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인생은 그렇게 바뀌었다. 이제 새로운 decade를 맞아 어떤 목표를 삼아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