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yla Tharp

11월 22, 2006 at 11:23 오전 (New York, On Stage, 마녀 Wrote)

        브로드웨이 연출가가 아닌 안무가로서 나는 싸프 여사를 무척 좋아한다. 물론 그의 안무를 너무 경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춤이 지극히 미국적이라서 좋다. 그는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댄서들의 힘을 최대한 끌어낸다. 음악의 박자보다 반 박자, 때로는 놀랍게도 엇박자로 움직이는 댄서들의 움직임은 어쨋든 짜릿한 쾌감이 있다. 특히 그가 스윙을 배경으로 작업할 때 그런데, 그것은 진실로 재즈의 정신과 맞아 떨어지는 ‘백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임프로비제이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거쉰과 빌 에반스가 딱 떨어지는 백인 재즈 오케스트라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늘 그렇지만 거쉰과 빌 에반스의 음악들은 오케스트라나 빌 에반즈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는 오로지 트럼펫 하나, 둥가둥가 베이스 하나 곁들인 기타 연주, 혹은 좋은 흑인 가수의 목소리가 더 좋지만 말이다. 아니, 재즈는 흑인의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특히 이제 와서는 구별도 안된다. 하지만 전 시대에는 틀림없이 구분이 되었다. 싸프는 그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인 60년대부터 안무를 시작했다. 클래식한 발레에서 모던 발레로, 스윙으로, 재즈로 그리고 다시 모든 걸 합치는 시대를 거쳐오는 그의 안무는 나름의 미국식의 클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밀로스 포먼 감독과 작업했던 세 개의 영화도 그렇고 마지막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백야’도 그렇고 단 네 개의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움직임들은 영화 필름에 철썩 달라붙어 배우와 소리와 스텝이 하나로 일사불란하에 움직이는, 뭐 하나도 빠지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헤어가 시작될 때의 그 웅장한 ‘Aquaris’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한 장면 맡을 땐 꽤 하던 이 아줌마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오면 갑자기 팍 신파로 추락을 한다. 이미 전작인 Movin’ out에서 그 전조는 충분히 발견되었다. 이 때 이 아줌마는 시카고 공연의 악평을 계기로 쇼 닥터를 초빙하여 자신의 ‘모던함’을 다 묻어버리는 신파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고역을 치렀다. 그건 틀림없는 굴욕이었지만 결과는 달콤했다. 아줌마는 안무상을 거머쥐었다. 토니상이라는 이 지극히 상업적인 상은 아줌마에게 늦은 나이에 새로운 유혹으로의 초대였고 아줌마는 덥썩 미끼를 물었다. 문제는… 밥 딜런이라는 데 있었다. 사실 나는 밥 딜런과 사프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밥 딜런의 그 리듬감 있는 웅얼거림, 록이면 록, 포크면 포크, 심지어 블루스까지 뭘 불러도 이 아저씨의 노래는 이 아저씨만의 것이다. 누가 리메이크를 해도 이 아저씨가 부른 원곡을 따라가는 걸 아직 본 적이 없다. 문제는 이 아저씨가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가사도 다 쓰다 보니… 게다가 대부분의 곡들이 왜 썼나, 왜 불렀나, 그걸 부를 때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정황들이 하도 톱니바퀴처럼 딱 맞아 떨어져서 이게 다른 정황에 놓이면 너무 어색하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 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저씨의 노래 ‘Knocking on heven’s door’는 베트남전에 끌려가기 싫은 사내가 부르는 지옥 가기 싫어요,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이 뮤지컬 안에서는 세 명의 주요인물 가운데 하나인 Ahrab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 이건 완전히 찬송가였다. 천국이 날 부르네, 얼굴도 못 본 엄마, 날 받아줘요, 풍이었다. 아, 죽어가면서 부르는 노래… 맞다. 하지만… 이 아저씨 공연에서 온갖 치사한 짓은 혼자 다 하는 비열한 캐릭터여서 이 자가 죽고 난 뒤 갑자기 축제 분위기가 되게 만든 분이다. 그런데… 이 비장의 무기를 이 아저씨가 부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모든 게 이런 식이다. 문제는 명확하다. 싸프 여사는 전작의 굴욕에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으셨다. 그래서 밥 딜런의 노래를 모아 이야기를 엮어 보려 하셨지만 그게 엘튼 존이고 빌리 조엘이고 비치 보이즈면 몰라도 밥 딜런은 애당초 글렀다. 밥 딜런은 곡 하나 하나가 최소한 하나의 중, 단편 소설은 되니 말이다. 가사를 바꾸면 더 개판이 될 거고. 하지만 아줌마가 이 작품의 배경으로 막 굴러가는 서커스단을 설정하고 광대들이 단장을 ‘다구리’ 해서 죽이는 설정은 짜릿할 정도로 좋았다. 아니, 이런 막가는 어두운 얘기, 브로드웨이에서 언제 보겠나. 자식새끼가 애비 죽고 새로운 단장이 되어 애비의 여자를 끌어안고 새 시대를 열어간다는 이 정말 막가는 스토리…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토리를… 모두 머릿속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프다. 아무 이유가 없다. 아무런… 정말 아무런 이유가 없다. 스물 다섯 곡이 불리워지는 동안… 그 모든 장면이 따로 놀고, 어느 관객도 이 스물 다섯개의 장면을 이어 맞추질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프 여사가 하고 싶은 말, 보고여주고 싶은 춤… 그런 게 왔다. 이 작품은 춤으로도 노래로도 어정쩡했다. 차라리 그녀의 장기인 찡하게 추는 장면이라도 많았으면 춤이라도 환호를 받았을텐데 세 명은 노래하고 일곱명은 춤을 추다 보니 노래 할 땐 뒤에서 춤 추기 뻘쭘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야, 사실 뻘쭘할 일도 아닌데, 싸프 아줌마가 평소 자기 안무하던 빨로 그냥 밀어붙였으면 괜찮았겠지만 이 아줌마 ‘왜?’ 를 떠올리기 시작하니 그게 안되는 거다. 그러니 배우들은 춤을 추다 말고, 가수들은… 하하… 그 개같은 여배우… 정말 때려 죽이고 싶더라.  그나마 Ahrab 이나 Coyote는 나름 자기 주관을 가지고 부르는데, 이 멍청한 여배우는… 노래 다 말아 먹고… 나중에 훌라푸흐 걸고 나와 ‘Showtime!’을 외칠 땐, 너만 들어가면 그래도 참고 보겠다! 라는 외침이 절로 터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여기 저기서 그녀가 나올 때마다 중반 이후에는 끙! 하는 신음소리가 들리더라니까. 나중에 박수 받는데 정말 웬만하면 박수 쳐줄텐데 박수를 앙상블보다 덜 받았지만 그래도 싸다. 미스 캐스팅도 이런 미스 캐스팅은 처음 본다.

          싸프 아줌마. 시카고 휴버트 스트릿 댄스 시절로 돌아오세요. 바람 부는 도시에서 총알과 바람을 뚫고 강하게 댄서들을 키우신 당신이 뉴욕 와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까짓 아줌마 머리로는 도저히 완성이 안되는 ‘드라마’는 버리고 당신 잘하는 그 ‘춤’을 추세요. 그 많은 안무가 출신 연출가들이 있었고 그들이 브로드웨이의 가장 중요한 쇼비지니스의 연출가 쪽 맥이긴 하지만 아줌마는 아니에요. 아줌마의 마인드는 무서울 정도로 언더에요. 그래서 아줌마가 좋고, 그래서 브로드웨이에서는 안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아줌마가 너무 좋아요. 아줌마가 얼마나 승질이 더럽고 독재자에 개떡같이 캐스트 턱턱 짤라대고 스텝 갈아치운다 해도 내 알 바 아니지.  그냥… 아줌마가 밥 딜런 노래로 정말 춤으로 다시 한 번 승부 거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될 법한 일이 아닐테지만, 어쨋거나, 아줌마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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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many of you know what you want?

11월 6, 2006 at 2:56 오전 (New York, On Stage, 마녀 Wrote)

일인극 Stanley 

          Stanley를 보고 왔다. 스탠리, 연극사에 길이 남을 이 유명한 캐릭터, 야수와 같은, 말론 브란도에 의해 완벽하게 육신을 얻은 존재, 작가인 테네시 윌리암스의 의도마저 훌쩍 뛰어넘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오직 단 하나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이 캐릭터를 감히 가지고 논 귀여운 배우가 있으시다. 작품의 가치로서, 완성도를 따지자면 이 작품은 별 다섯개 만점에 별 두 개짜리다. 그나마도 꽤 괜찮은 프로젝션 아이디어와 무대 덕분이다. 배우는 발성도 안되고 몸도 덜 풀린데다 눈빛도 희멀겋다. 왜냐하면 그는 간밤에 음주가 심하셨거든. 배우의 숨결이 객석 전체로 전해지는 그 조그만 극장에서 일인극을 공연하면서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깨 무대에 서는 배우는 매장당해 마땅하다. 물론 그는 술이 깼다. 정신은 멀쩡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신 술은 다음날까지 그 독특한 ‘향기’를 남기지 않나. 보드카를 너무 드셨던 모양이지. 하지만 묘하게도… 스탠리라는 인물과 술냄새가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을 수가 있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외쳤듯이 ‘난 짐승이 아냐!’ 라는 그 말, 그에게서 풍기는 덜 가신 술 향기(웩)와 춤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은 그를 ‘짐승’으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말론 브란도, 그 섹시함의 드럼통에서 건져내신 몸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이 술 덜 깬 배우는 그야말로 멍청한 짐승의 자리로 추락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안다. 하여, 그는 자기 자신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 쓰레기 가운데 핀 꽃인양 꾸민다. 하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발성은… 짜증난다. 더하여 말론 브란도의 흉내를 내는 모습은 상한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마냥 부조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 나는 심하게 상했다. 그는 홀로 무대에 서서 관객의 가슴을 두드린다. 아니, 그는 다정하게 노크해 줄 그런 배우가 아니다. 그는 무식한 짐승. 그러므로 그는 핏줄이 불끈 드러난 그 주먹으로 관객의 가슴을 친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오직 단 한 줄의 대사로 그는 그 쉽지 않은 짓을 해낸다. 그는 관객에게 묻는다. 매번 다른 표정으로, 매번 다른 억양으로, 매번 다른 감정으로 그러나 물을 때마다 내 가슴은 칼로 베인 듯 날카롭게 자상을 입는다. How many of you out there know what you want? 그리고 이어서 또 묻는다. How many of you are hungry but don’t know what you want to eat? 그렇다. 나는, 지금, 심하게 굶주려 있다. 그의 질문에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차라리 모르고 싶을 정도로 심하게 잘 안다. 하여, 나는 굶주려 있다. 내 얼굴이 너무 심각했나보다. 이런 후진 공연이 나에게 정면으로 들이대다니, 빌어먹을! 나는 세번째 줄 한가운데 섬처럼, 오직 한 명 뿐인 동양인 여자로 앉아 있었기에 그는 공연 내내 나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 소극장에서 세번째 줄에 앉을 때는 배우와의 대면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관객으로서 배우를 동경한 적이 없는 나는 단 한 번도 배우와의 대면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는 나를 가리키며 liar!라고 외쳤다. 물론 오직 나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손 들지 않은 사람들 하나 하나를 가리켜 외쳤다. 그 때 그의 질문은 How many of you lost everything ever you want? 였다. 나는 거의 손을 들 뻔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하여, 나는 손을 들지 않았고 그가 오른팔을 쭉 뻗어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liar!하고 외칠 때 고개를 끄덕이며 yes, you are. 하고 응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웃었고 그도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웃었다.

       대본은 엉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다란 덩어리를 삼키지 못한 채 작고 음향 형편없는 극장을 떠났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배우라도 무대 위에 서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는 무한한 힘을 지닌다. 오늘의 그 배우가 그랬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를 형편없는 발성과 성대모사도 제대로 못하는 배우. 그러나 그는 내게 물었다. Do you know what you want? 하고. I know what I want is that what I have not to want. 하고 나는 대답했다. 마음 속으로만. 그랬다. 나는 내가 바래서는 안되는 것을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이 공연에서, 이 형편없는 공연에서 내 자신과 대면했다. 나의 이기. 나의 자존감. 나의 존재. 이 공연을 나는 그러므로 결코 잊지 않을테다. 질문을 던지려면, 직구로, 스트라이크로 던지라. 할 말이 있을 때는 두 눈을 똑바로 보며 제대로 칼을 꽂아라. 비록 상처를 입을지라도 그러는 그대를 미워하지는 못하리라. 공연에서 스탠리가 외쳤던 그 대사를 조금 바꾸면 바로 내 심정. 하지만 누구에게 추천하기에는 공연 자체가 지나치게 수준미달이다. 상가집 가서 지 슬픔으로 겨워 우는 여편네가 바로 이 공연을 보던 나였다. It turned my mind absolutely upside down. … It was fantastic!

사족이지만 욕망기차 안의 두 자매, 별소녀 스텔라, 순수소녀 블랑쉬…아아…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명센스는 정말… 미치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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