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빌은 살아있다

December 26, 2006 at 10:08 am (New York, On Stage, 마녀 Wrote)

로켓쇼를 보면서 나름 감동을 받은 게 있다. 보더빌에는 순서라는 게 있다. 뭐랄까, 전통적인 순서랄까. 로켓쇼는 많게는 하루 다섯 번, 적게는 하루 세 번을 공연한다. 그러려면 손님 빨리 쫓아내고, 하이라이트는 서두에 둬야 한다. 오래 전의 보더빌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이 작품도 그렇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 유치뽕짝 뻔할 뻔자 쇼에 75년간 끌어들이고 있는가. 바로 그 뻔할 뻔자 때문이다. 그렇다. 스포츠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 보더빌도 살아있다. 벌레스크도 살아있다. 쇼는 죽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된 전통이 오늘에도 남아있는 걸 보면 묘하게 가슴이 설렌다. 내용이야 어쨋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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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December 19, 2006 at 12:15 pm (Uncategorized)

High Fidelity가 쫑났다. 놀란 야옹군께옵서 쫑나는 날 새벽녘에 허겁지겁 문자를 날리셨다. 오늘 쫑난다, 언능 가서 봐라! 뭐랄까 거의 절규에 가깝달까. 지난번에 밥 딜런의 작품도 그러더니 이번 거도 행여 놓칠까봐 노심초사 하시는 게 정말이지… 뭐랄까. 본받아야지. 하지만 야옹씨, 나는 이미 그걸 봐 버렸단 말이다. 하도 어이가 엄써서… 이걸 뭐라고 말해야 되나… 차암… 고민 많이 했다. 아니… 보고 나서 … 뭐 하나 칭찬해 줄 게… 엄뜨란 말이다. 특히 음악. 음악… 하아… 그간 참 수많은 같지 않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봤다. 가장 최악이었던 게 ‘어반 카우보이’였는데 그 기록은 ‘부르클린’과 ‘인 마이 라이프’가 등장한 이후 공동 최악 0순위를 랭크하고 있었더랬다. 아니 하다못해 밥 딜런 건 노래가 일단 기본은 하잖나. 아아 그런데 어뜨케… 어뜨게 이 따위 간당간당한 게 브로드웨이에 올라오는지 그게 정말 미수테리우스 하다. 뭐랄까, 만약 이 작품이 제작자의 기획으로 시작된 게 아니라 작가가 직접 만들어 컨택하고 다녔다면 빌어먹을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오프에서도 안 받아줬을 기도 안 찬 음악이라는 게 문제다. 뭐가 마치 ‘더미를 위한 뮤지컬 작곡법’ 이라든가, 뮤지컬 작곡 6주 완성 코스, 이따위 걸 막 마친 뒤 쓴 음악같다. 자, 이제 1절 했으니, 후렴구를 들려드리지, 그리고 이게 곡의 클라이막스야, 잘 들어둬, 자, 이제 마무리 할께. 이런 식이다. 그리고 한 번도… 이런 지루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다. 멜로디… 라고 할 것 조차 없고,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결정적인 한 방의 솔로 발라드를 먹이는 장면의 노래가… 가장 개판이었다면 할 말 다 한 거 아닌가? 제작자는… 바보냐?

난 원작 영화를 못 봤다. 한국에서는 개봉은 안하고 비디오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다고 들었다. 존 쿠삭이 주연했다고 하는데, 존 쿠삭에 죽고 못사는 여성동지들 많은 건 알지만 나는 존 쿠삭은 좀 싫다. 뭐가 너무… ‘척’ 하셔서. 존 쿠삭이 좋았던 영화는 딱 하나 덜 떨어진 사기꾼 하다 지 엄마에게 총 맞고 죽는 영화였다. 어쨋거나 … 영화도 안 봤지만… 뮤지컬 보고 나니 영화 뭐하러 보나 싶다. 뭐 원작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엄청 좋았다는데, 알게 뭐래. 그런 음악은 아예 나오질 않는데. 나… 정말 살다 살다… 오프 규모를 이렇게 뻥 튀겨서 브로드웨이에 올리고 음악은 학예회 수준인 건 진짜 처음 봤다. 그래도 다들 프로필에 ‘브로드웨이’ 작곡가, 배우… 이름 올릴 거 아니냐고. 모르는 사람은 우와, 대단하다, 이럴 거 아니냐구. 아, 정말 속지 말자 브로드웨이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브로드웨이… 절대 보증수표 아니다. 이런 엉망인 작품은 뮤지컬 판에서도 20년에 한 번 나와줄까 말까 하다. 이거 다른 거 다 제끼고 망할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0순위 먹으셨다. 당분간 더 나쁜 작품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보는 내내 어이가 없어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더 웃긴 건 주연 배우가 1막 마치고 상태 안 좋다고 내려가고 2막에선 언더 스터디가 나왔는데, 상태 안 좋았던 주연배우보다 상태 좋은 언더가 낫다는 걸 보여주었지만, 그는 아무래도 좀 더 정진하지 않는 한 주연 꿰차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쨋거나… 이런 미스테리를 한 번 풀어보는 것도 재밌는 작업이 될 거 같다. 누가 봐도 망할 공연, 왜 올라오나, 이런 거 말이지. 리스트만 해도 벌써 얼추 열 개는 채웠다. 아… 내 금쪽같은 시간을 돌려달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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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A Dance company in NY

December 7, 2006 at 5:47 am (New York, On Stage, 마녀 Wrote)

           해롤드 프린스는 ‘이유 없는 춤은 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참 독특한 연출가다. 제작자 출신으로 연출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제작자로서의 흥행 마인드를 놓치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늘 공부했고, 자신의 내면에서는 뭔가가 모자르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가 자신에게 모라자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과거의 무엇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다. 늘 옳다. 우리는 늘 새로운 트렌드가 무엇인가에 집착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모든 것은 과거에 깊이 천착해 있다. 어쨋든 해롤드 프린스가 ‘이유 없는 춤은 추지 않는다’는 말을 뮤지컬 무대를 가리켜 한 말이었지만 그걸 춤으로 뒤집어 보면 춤의 무대에서는 ‘이유 없는 걸음은 걷지 않는다’ 가 아닐까. 그렇다. 댄서는 무대 위에서… ‘그저’ 걸으면 안된다. 댄서는 한 순간도 무대 위에서 시간을 그저 때워서는 안된다. 그건, 직무유기죄에 해당된다. 그렇게 댄서를 한 순간이라도 버려두는 안무가가 먼저 죄값을 치러야 하지만.

 이번이 두 번째라는 한예종의 KNUA 댄스 컴퍼니의 공연을 보았다. 첫번째는 한국무용이었는데, 이거 보면서 아주 기가 질려버렸다. 나는 춤 자체를 잘 모른다. 그러니까 별로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이 없을 줄 알았다. 내가 아는 건, 한국 춤에서 여자의 춤은 근본적으로 기생춤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과거에, 그것도 그닥 멀지 않은 과거에 ‘가인’은 몸 파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우리나라 만의 일이 아니다. 가부키만 해도 여자의 출연을 금지시킨 이유가 여자가 무대에 오르면 사내들은 그녀들을 품으려고 닥달을 했고, 결국 돈은 거기서 벌렸기 때문이다. 풍기문란. 하지만 가부키가 남창으로서의 역할을 새로 담당하게 될 줄이야, 그걸 막은 쇼군께서는 짐작을 하셨거나 말거나. 어쨋건 무대에 서는 자는 자신의 ‘몸’을 내보이는 자다. 그 시절에 몸을 내보인다는 것은 이미 그 몸은 ‘주는’ 몸이라는 뜻이다. 왜 보여 ‘준다’고 하는가. 예수님 지적대로 생각만 해도 간음이라는 식의 몽상적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다. 존재하는 물적 존재로서의 ‘몸’이 눈 앞에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은 천한 일이었다. 무대에 서는 몸은 보는 모든 사람들의 ‘소유’다. 그게, 지금에 와서는 티켓 사서 공연 보고 팬클럽에 가입하는 수동적인 행위라면, 그 당시에는 그 ‘가인’은 가질 수 있는 존재였다. 당연히 ‘가인’의 가치는 더 가지고 싶게 만드는 데 달려 있었다. 하지만, 작금에 와서, 작금에 와서도 마당이나 안방이나 폭포 가의 정자가 아닌 조명기 달린 무대에 서서 젊은 댄서들이 날 잡아 잡숴 춤을 추는 걸 보는 건 아연하다. 이 공연의 첫 춤이 바로 그랬다. 아니, 그게 춤의 의도였다면, 대단히 성공하신 게 맞다. 춤사위보다 먼저 눈꼬리 살살 내리며 눈웃음 치는 훈련 먼저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무슨 춤에 그렇게 색기가 좔좔 흘러내리는지…  폴 테일러의 Esplanade를 연상케 하는 댄서들의 등퇴장은 가끔 손 끊긴 강강수월레처럼 보이기까지. 나쁘다 좋다를 떠나, 춤이 사람을 ‘홀리는’ 것은 정말 홀림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침 흐르는 좋은 반응이지만 그 홀림이 50년 전의 것이라면, 아주 생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비록 내가 50년 전에 태어났어도 저 홀림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님에야. 왜.. 왜… 왜…!! 라는 질문으로 가득찼던 첫번째 레파토리. 게다가 결코 그게 섹시한 것은 아니었다. 섹시한 게 좋냐, 라는 질문은 일단 뒤로 빼고.

두번째, 세번째는 … 마리우스 쁘띠빠와 발란신이었는데, 쁘띠빠는 그렇다 치고, 발란신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만 가득 들었다. 독무 추는 댄서가 착지할 때마다 내가 다 걱정되더라는 말만 해두자.

네번째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음악의 흐름과 몸의 흐름이 맞지 않았다. 이건 결코 음악의 박자와 몸의 박자가 맞지 않았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음악과 몸이 다른 연주를 하는 걸 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하지만 때로는 몸이 음악을 배신하기도 하도 때로는 음악이 몸을 배신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배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직무유기였다. 이 안에는 몇 가지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특히 꼭 따지자면 두 번째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에서 음악은(아니, 소리는) 극적일 정도로 뚝뚝 끊으며 긴장을 유발하는데, 댄서들은 설렁 설렁 걷는다. 그 순간 잠시… 분노를 느꼈다. 음악이 멈추면 댄서도 멈춘다는 건 우습다. 하지만 그 순간에 아무 긴장도 없이 ‘걷는다’는 건 일종의 배신이다. 그리고 무수한 하얀 공을 들고 노는 장면. 아이디어는 참 예뻤지만 예쁘기만 하고 끝났다. 그 많은 공들이 어떤 리엑션도 유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공이 움직임의 원인이 되기보다는 그저 살짝 부담스러운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다. 메렝게나 한 판 질펀하게 한 번 추었으면 싶은 그런 흥겨운 음악에서도 댄서들이 줄창 ‘모던!’만 외쳤던 것도 지루. 정말 보기 좋았던 것은 달마시안 같은 젊은 댄서들의 힘이 남아도는 몸이었다. 가끔 한국의 ‘모던 댄스’를 보면서 갑갑하게 느끼는 건 모던을 낯선 움직임으로만 해석하려 드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짐작 때문이다. 불 위의 오징어처럼 뒤틀리는 동작들을 빠르게 나열하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좀 느긋하게 귀를 기울이는 게 어떨까 하는 안타까움. 좀 더 넉넉하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내가 만약 스물이거나 혹은 스물 다섯 근처라면 이 춤을 보면서 댄서들의 테크닉이 모자란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어제 본 건 남아도는 힘이었다. 안무가 이들의 남아도는 힘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이들은 팔팔했다. 근육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해서는 당장이라도 날듯이 뛰어나갈 듯한 달마시안들이었다. 달마시안은 사냥개다. 하루라도 전력으로 달려주지 않으면 근육에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 죽는 개가 달마시안이다. 이들이 그랬다. 하지만 어제의 춤은 이들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원만 그리며 달리게 했다. 좋은 음악에 힘이 남아도는 몸이 있었는데도 그랬다는 건 안타깝다. 단지, 조금 안타까웠다는 것이지, 사실 전체적으로는 흐뭇할 정도로 좋았다. 그저… 조금 더, 조금 더 바라는 것 뿐이다. 달마시안, 달려!

 가장 개판은 조명이었는데, 시간 문제였는지 셋팅에 실패한 듯 했다. 댄서들이 조명 너머로 사라지는 걸 1시간 반 동안 봐봐. 조명 다 뿌개고 싶지. 의상… 마지막 작품만 빼고, 어쩌면 그리 소재가 초지일관 하신지… 그것도 일종의 컨셉이라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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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 Bye Blackbird

December 5, 2006 at 1:37 pm (Off Stage, 마녀 Wrote)

        아주 오래된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그 유명한 앨범 ‘Round About Midnight’에서였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게 바로 영화 킹콩에서였다. 첫 소절만 살짝 지나가지만 아마도 그 무렵… 이 노래가 처음 무대에서 불리워졌을 그 무렵 바로 그런 형식이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보더빌이 아직 죽지 않았던 그 무렵. 그런데 잠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진 건 몇 년? 인터넷 찾아보니 31년 완공. 시대적으로 제대로 킹콩 영화의 내용과 맞물린다. 주인공 앤은 보더빌 극단에서 컸지만 안타깝게도 한참 일할 나이에 보더빌이 쫄딱 망해가는 시기라 배를 쫄쫄 굶는 신세. 이런 세세한 디테일은 물론, 영화 속의 뮤지컬 한 장면 한 장면에 들인 공을 보면 피터 잭슨의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보인다. 아니, 공포영화와 액션 영화에 미친 피터 잭슨이 어인 뮤지컬? 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필모그라피 한가운데 박힌 Meet the Feebles 찾아보시라. 등장인물-인물?-아니, 등장 캐릭터 무려 마흔 개 정도 가운데 살아남는 건 단 두 마리. 그 당시 한참 인기 좋았던 참깨거리의 인형 캐릭터들이 하드코어 섹스와 하드코어 살인행위를 마다 않는, 블랙 코미디에 무엇보다도 … 뮤지컬이다. 어쨋거나 이 노래, 올해 뉴욕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국 네셔널 극단의 History boys에서 선생인 헥터의 추도식에서 전곡을 들을 수 있다. 영화가 나온다니 아마 영화 말미에 이 곡을 들을 수 있을 듯. 가끔 그 시대가 궁금하다. 낡은 흑백사진과 다큐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지지직 사운드로밖에 들을 수 없는 그 시절의 공연들.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찬 물만 나왔었던 그 시절이. 참고로 블랙버드는… 뉴욕이 빅 애플로 불리기 전, 잠시동안 뉴욕의 애칭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대부분의 레코딩에서는 1절과 2절은 생략되고 코러스 부분만 불려왔다. 영화 킹콩에서도 그랬다. 생각해 보니 프랭크 시나트라도 이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난, 배우가 노래 잘 부르고 연기 잘 하면 어지간해서는 용서해 주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나트라의 개인적인 행적은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개자식.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시나트라를 좋아했는데, 그런 스스로에게 짜증이 날 지경.


Verse:
Blackbird blackbird singing the blues all day
Right outside of my door
Blackbird blackbird who do you sit and say
There’s no sunshine in store
All thru the winter you hung around
Now I begin to feel homeward bound
Blackbird blackbird gotta be on my way
Where there’s sunshine galore.

Chorus:
Pack up all my care and woe,
Here I go singing low
Bye bye blackbird.
Where somebody waits for me,
Sugar’s sweet so is she
Bye bye blackbird.
No one here can love and understand me
Oh what hard luck stories they all hand me.
Make my bed and light the light,
I’ll arrive late tonight
Blackbird bye bye.

Verse:
Bluebird, bluebird, calling me far away
I’ve been longing for you.
Bluebird, bluebird, what do I hear you say?
Skies are turning to blue, I’m like a flower that’s fading here,
Where ev’ry hour is one long tear.
Bluebird, bluebird this is my lucky day.
Now my dreams will come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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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연출가들

December 2, 2006 at 5:32 am (Uncategorized)

      여기서 소박하다는 건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물론 소박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카리스마가 절절 넘치는 분들도 넘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대 연출가들은 다른 무대 종사자들에 비해 확실히 성격에 모난 데가 적다. 아무래도 대 군단을 이끌고 가야 하는 역할이라서 잘 듣는다. 연출가만 다섯을 모아놓고 대담을 하니까 정말 재밌는 현상이 있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끊지 않는다. 30분을 보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부드럽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대담은 참 오랜만에 본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공연 종사자들이 나와서 비하인드 스토리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벼운 프로그램인데, 대부분은 작품 하나를 잡아 연출가와 주연 배우들이 등장한다.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면 아주 난리다. 연출가가 작품 설명하고 있는데 끼어들어서는 난데없이 자기가 연출가의 말을 이해 못해서 얼마나 곤란했는지를 떠들다가 갑자기 다른 작품 할 때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이다. 다른 배우가 웃긴 얘기를 해서 관객을 웃기면 나머지 배우들은 긴장하는 게 보인다. 아, 나도 웃겨야지, 하는 불끈 쥔 주먹이 보이고. 배우의 험담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게 배우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은 이기적이다. 그들은 조명을 따라 뛰는 자들이다. 그들의 지향점은 언제나 다섯 살이다. 철이 덜 들었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다섯 살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줄 알았다. 아무리 못난 아이라도 다섯 살 때는 집에서 왕이었고 친척들은 지지리도 못 부르는 노래도 이쁘다고 들어주는, 그런, 스테이지의 한 가운데 서는 존재였다. 기억나는가, 명절날 안방에 둘러앉은 친척들이 다섯 살의 당신을 한가운데 불러내어서는 뭘 해도 깔깔 웃으며 즐거워했던. 배우들은 그 시점에 머물러 있다. 그들이 설혹 매체에 등장하여 아무리 점잖게,  아무리 겸손하게 처신한다 해도 그들은 배우다. 배우는,  배우가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과시욕’을 지니고 있다. 그건 잘난 척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보이고 싶다’ 라는 그런 원초적인 욕구다.

        어쨋든, 연출가들은 자신을 ‘보인다’ 보다는 ‘보이는 자들을 보이게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다르다. 비록 그들 가운데 몇 몇은 배우 출신이었다 해도 다르다. 그러고 보면 배우가 되고 싶었다가 연출가로 길을 바꾼 사람들과 작가 출신의 연출가, 애당초 연출로 무대 경력을 시작한 사람들의 태도도 매우 다르다. 다르긴 다르지만 그들은 확실히 사회적이고 친화적이다. 보고 있으면 무척 재밌다. 오늘 모인 다섯 사람은 각각 이 유형 안데 다 포함된다. 이들의 예의바르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이 바닥에서 참으로 진귀한 재능이다. 그들은 다른 연출가가 이야기할 때 그걸 그저 ‘견디는’ 게 아니라 ‘듣는다’  배우들이 다른 사람들이 얘기할 때는 코 후비며, 왜 자신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지 짜증내는 걸 항상 보아와서 그런지 오늘의 프로그램은 감동이다. 심지어 다른 연출가가 말을 하는 동안에 끼어드는 행동 조차도 매우 신중하다. 그리고 바로 다시 원래 말을 시작하던 사람에게 차례를 돌려준다. 보면서 많이 웃었다. 들은 이야기들 중에 새로운 것도 없었지만 리 실버만이 고등학교 때 연극 캠프에서 자기가 제일 잘 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며 우쭐했는데, 지도 선생님이 불러서는 다음 캠프에도 꼭 참가해 달라고 부탁하더란다. ‘오, 역시 난 굉장해!’ 하는 기쁨도 잠시, 그 선생님은 ‘넌 끔찍했어. 정말 끔찍했어. 하지만 다른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연출 말이지.” 다음 캠프에서 리는 눈물을 삼키며 무대에 설 기회를 노리며 연출 파트를 맡았고, 그 일이 리의 인생 목표를 바꿨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이건 틀림없이 웃기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다른  네 명의 연출가들, 덕 휴즈, 존 랜도, 조 멘텔로 누구도 웃질 않고 심각하게 듣는 거야. 다들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이다! ㅋㅋ 사회자만 혼자 무안해 하며 웃더만.  가끔 배우가 못 되어서 연출가나 작가나 다른 무대 관련 일에 종사한다고 굳게 믿는 배우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는데, 그 생각은 70퍼센트는 옳다. 어찌 옳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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