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무대는 배우의 것
늘 안젤라 랜즈베리는 ‘아담 사이즈’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의 동그란 얼굴과 동그란 눈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시카의 추리극장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이 아줌마를 처음 본 건 나로서는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다.
언제냐 하면 진짜 어렸을 때 삼촌과 함께 극장에 가서 이 삼손과 데릴라를 봤거든. 그 때 데릴라 역에는 어딘지 비비안 리를 연상케 하는 배우가, 삼손 역에는 썰어 열 두 접시 입술이 너무 부담스러운 사극 전문배우(내 멋대로) 빅터 매춰(이름부터 마쵸셔!!) 였는데, 안젤라 렌즈베리는 그 삼손의 정실부인(?) 역이었다. 짧게 나왔지만 꽤 비극적이었고, 삼손이 데릴라를 가볍게 콧웃음을 쳐 넘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답고 지고지순하고… 뭐 그런 역이었는데, 동그란 눈과 전혀 미녀라고 볼 수 없는 얼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쨋든 기억의 심연 너머로 가라앉아 있던 이 아줌마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한 것이 제시카의 추리극장과 날으는 침대(?) 뭐 그런 뮤지컬 영화였다. 여기서 안젤라 아줌마는 이미 할머니 분위기였고 눈빛이 대체 마녀일 수가 없지만 어쨋든 착한 마녀 아줌마로 애들 세 마리(두 마리?)와 툭하면 삐지는 아저씨 한 마리를 침대에 태우고 웬 모험을 떠나는 황당 스토리. 서양 동화에 워낙 침대 타고 날르는 종류가 많은데 그 계보를 잇는 작품 가운데서는 꽤 명작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 아줌마를 경배하게 되었는데, 바로 스위니 토트의 러벳 부인 역 때문이다. 그 온갖 욕망의 진창에서 이 아줌마는 스위니 토드에 품위를 부여했다. 이 아줌마가 하면 뭐든지 다 용서가 됐다. 사람 잡아 파이 만들고 짝사랑한 사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마누라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심지어 미친 마누라가 매일 파이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음에도!) 살인한 남자를 으깨 파이를 만들면서도 그 남자의 하인에게는 또 상냥하게 대해주는… 대체 이런 복잡한 인물을 어떻게 … 이토록 유머러스하고 다정하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안젤라 아줌마가 아니고서는! 어쨋든 브로드웨이의 보배와도 같은 이 아줌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빈다. 바로 옆에서 뵈니, 어찌나 키도 크시고 그 연세에 팔등신이시던지, 젊은 시절 ‘예쁘기만 하고 특징이 없는 배우’였다는 사실이 비로소 이해됐다. 딴 건 몰라도… 몸매 하나는 발군이셨을 듯. 게다가 그 쭉 편 허리… 긴 목… 사람 잡더군.
그 옆에서 안젤라 렌즈베리에게 감사의 입맞춤을 건네는 분은 조지 헌. 스위티 토드의 그 분이다. 살도 많이 빠지고 얼굴도 많이 늙으셨지만 스위니 토드의 그림자 따위는 찾아 볼 수도 없을만치 유머러스하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고 계셨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아아… 그 목소리… 는 정말 변하지 않으셨음. 사랑해요, 두 분.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조지 헌 아저씨가 어깨에 손을 둘러주신 그 코트는 앞으로 빨지도 드라이 하지도 말까보다. ㅋㅋㅋ
드디어…
Lion King의 단체 할인 판매가 시작됐다. 가격은 이 바닥 가격으로는 꽤 비싼 30불. 개막한지 고작 3년째인 위키드와 자존심 한 판을 벌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데 그 참. 어쨋든 디즈니가 꽤 빨리 포기했던 아이다가 15-25불 수준이었고 오리지널 캐스트가 빠져나간 드뤄지 쉐펄론이 같은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꽤 비싸다. 아직 티켓 뿌리는 숫자는 많지 않지만 퍼블릭 스쿨부터 시작되었으니 올해 말 정도에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그 혜택을 꽤 누릴 수 있지 싶다. 이런 단체 할인은 공연을 올리는 극장/기획사 측에서 직접 퍼블릭 스쿨에 제공한다. 자리는 당연히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발코니 뒤쪽이지만 어쨋든 스탠딩이 15-20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감지덕지. 최근에는 라이언킹의 스탠딩 티켓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왜냐하면… 매진이 안 되는 바람에. 스탠딩 티켓의 판매 규정은 ‘매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라이언킹 10년간 잘 우려먹었다. 오페라의 유령도 십 년 우려먹고 퍼블릭 단체 돌리고 기업체 할인권 돌리는 온갖 경로를 다 거친 뒤에 결국 Tkts에 나왔었으니 곧 할인창구에서 왕사자 만날 수 있을 듯. 물론 할인 티켓이나 단체 티켓을 발행하기 시작하는 게 작품 자체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초기의 해더 해들리가 날라 했던 그 시절의 퀄리티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건 맞지만 말이다. 이건 그저… 시간의 문제다. 볼 사람 다 본. 가족 뮤지컬이란 게 일단 대박 터지면 온 가족이 500불 쾅 깨서 보러 가지만 다시 또 500불 쾅!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롱런의 문제라면 문제다. 물론 가족 관객보다는 성인 관객들이 훨씬 많긴 하다. 미녀와 야수를 내리고서까지 올리는 인어공주가 물 먹으면 디즈니 왕국도 남는 거라고는 왕사자 뿐이구나. 메리 포핀즈는 꽤 성공적이지만 이건 맥킨토시와의 합작, 이라기 보다는 맥킨토시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거라서. 거기에 타잔은… 꽤 한심한 수준이라 이것도 내심 빨리 포기했더만. 쥴리 테이머 아줌마가 작년에 이태리 프러덕션을 더 삐까번쩍하게 포장해서 내놓았던 메트의 ‘마술피리’는 올해 가족용으로 또 다시 손질을 거쳐 무려 엉어로 부르는 압축 ‘마술피리’로 거듭나서 작년 시즌에 이어 올해도 매진대박. 하지만… 마술피리라는 이 작품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거 정말 가족용 맞아? 온갖 뵨태들을 한 자리에 모았잖아, 그 참. 아니 그것도 너무나 모짜르트라고나 할까. 쥴리 아줌마가 초심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아줌마, 돌아와요, 너무 멀리 갔잖아!!! 디즈니 말고 후안 데리엔 시절로 돌아와 줘요. ㅜ.ㅜ
죽음
일반적으로 사람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최소한 본인만큼은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죽음이 자살이다. 물론 그 중에는 실비어 플라스처럼 죽음을 방해할 요소를 최소한 셋은 배치해 놓고 자살 기도를 했는데도, 그 모든 요소가 날씨와 등등의 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완전히 불발되고 예상에 어긋나게(?) 완벽하게 죽음에 이르러 버리는 그런 자살도 있다. 아직 죽어 본 적이 없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단 하나의 이유로 죽는 사람은 없지 않나 싶다. 겉으로 보이는 동기는 있을 것이다. 실연이니, 실패니, 실업이니… 하는 온갖 ‘失’ 들 즉, 잃은 것들, 도무지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을 그런 것들이 일단 가장 눈에 띈다. 자살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 가장 눈에 띄기도 할 것이다. 마음이란 것은 묘해서 정말로 칼로 찔린 듯이, 아니 삼지창으로 발기발기 찢긴 듯이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도 며칠이고 며칠이고 계속해서 계속되기도 한다. 조금 나아졌는가 싶으면 어느 날 새벽 문득 잠에서 깨서 다시 그 낯익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 똑같은 강도로 혹은 더한 강도로 다시 반복되기도 하는 게 마음이다. 그 지경이 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일은 조금 덜 아플 것이라는 시간의 약속을 믿고 산다. 그걸 못 믿는 사람들 가운데 소수가 죽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저 짐작이지만 그 잃어버린 것이 노새를 쓰러뜨리는 마지막 한 짐이었을 것이다. 쌓이고 쌓인 짐에 마지막 결정타를 먹이는. 오랜만에 네이버 들어가서 뉴스를 보니 뭐가 온통 자살 소식이다. 원인이 된 어떤 연예인은 우습게도 호스티스였던 전 애인의 ‘지인’들로부터 ‘가만 있지 않겠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모양인데, 그렇게 가만 있지 않겠다고 들고 일어날 좋은 친구들이 어째 그 사람이 가도록 두었는지도 참 알 수가 없다. 여기서 그 ‘지인’들이 죽을 줄 어떻게 알았겠나, 하고 항의를 한다면, 헤어진 연인은 또 어찌 알았겠냐 말이다. 연애란 것이 두 사람만의 일이고 사랑이란 마음의 일이라서 어찌 변할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본인조차 알 수가 없는 게 아니던가. 그저 짐작해 보건데 ‘가만 있지 않겠다’던 그 ‘지인’들, 죽은 사람이 그 연예인이과 헤어졌을 때 그럴 줄 알았다, 비싸게 굴더니 아무 것도 못 잡았다, 고 고소해 했던 ‘지인’들도 있었을지 누가 아나. 어쨋든, 나이 들수록 타인의 죽음과 타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함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