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were you when I was getting old?
제리 스프링어의 2막에서 마리아가 예수를 몰아붙이는 대사다. 2막에서 제리가 억지로 떠맡은 토크쇼(0r fucked up ass with barbed wire ㅋㅋ) 아담과 이브도 사과 한 알 따먹었다고 이 지랄이냐며, 애 낳고 아플 때, 자식놈들이 서로 때려 죽일 때, 그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느냐고 예수에게 지랄을 해댄다. 그 때마다 예수가 하는 대답은 ‘내 손의 상처를 보고 그런 말을 하냐?’는 항변. 악마는 ‘이 천 년 동안 써먹고도 아직도 지겹지 않냐!’고 지랄.
’내가 고통받을 때 예수님 어디 계셨어요?’ 는 아주 오래된 기독교 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의 의문이었다. 금관의 예수의 가사를 떠올려 보라. 대체 한국이란 나라에 신의 은총 따위가 있기는 있었나 싶었던 지지리 암울한 시절 동안, 대체 신은 어디서 뭐하고 자빠져 있었더란 말이냐.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이미 아무 의미가 없어졌음을 이 쇼는 보여주고 있다. 즉, 신의 존재유무, 신앙심의 유무가 이미 사람들에게 아무 고뇌도 고통도 주지 않는다. 이 질문에서 마리아의 촛점은 내가 고통받고 있었다는 게 아니다. 마리아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가 늙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죽은 자도 살리는 예수가 어째서 마리아에게 젊음을 돌려주지 않는가. 하다못해 서저리 비용이라도 대줘야지. 물을 포도주로 만들면서 어째서 돌을 금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는가 말이다. 불과 20년 전 만 해도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었던 존재론… 의미 없음. 에 대한 조롱. 이미 반기독교니 신성 침해니의 개념 따위는 요단강도 사틱스도 다 건넌지 오래인 질문이다. 지금, 오늘 의미있는 질문은,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돈지랄 하며 젊게, 자극받으며 사는 것. 아름답게 ‘보이는 것’ 뿐. 사유가… 의미가 있나? 오늘은 몰라도 내일도? 그저 주워 처먹으며 사는 거 말고… 더? 이 작품을 보고 등골이 서늘한 건… 그래서 나 뿐이 아닐게다. 도덕성의 해이니, 신성모독이니 하는 따위는 애당초 관심도 없었으니까.